MY MENU

지난전시

제목

A.R. Penck 회화 개인展 [2006.2.24 - 4.29]

작성자
PHILIP KANG GALLERY
작성일
2009.10.16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4926
내용



A.R. Penck / 에이.알. 펭크 (German, b.1939)



<전시개요>


                          A.R.Penck 展


 독일 신표현주의 대가, 세계적인 거장 A.R. Penck의 두 번째 개인전을 열며...

 전후(戰後) 독일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A.R. 펭크(A.R. Penck)는 이른바 ‘독일 신표현주의’미술의 대표주자이다. 1939년 랄프 빙클러(Ralf Winkler)란 본명으로 과거 동독의 드레스덴(Dresden)에서 출생하였다. 펭크의 작품이 서방에 크게 알려져 주목받지만 서독과의 접촉을 이유로 전시회가 금지되는 등 활동에 큰 제약을 받았다. 그는 결국 1980년 서독으로 망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독 거주시절인 1968년 예명인 A.R. Penck를 본명대신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같은 해 쾰른(Köln)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70년대 초부터 미술관 개인전을 본격적으로 갖게 되는데, 바젤미술관, 베른미술관, 쾰른미술관, 베를린국립미술관, 취리히미술관 등에서 수많은 대규모 전시회를 가졌다.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 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였고,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참가하였다.

 젊은 나이부터 고전음악과 재즈 음악에 심취하였고 1984년에는 뉴욕, 런던, 독일에서 음악가들과 함께 프리재즈와 록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면서 여러 음반이 발표되었다.

 회화 뿐 아니라 조각 작품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많은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여러 차례 조각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와 교우관계를 쌓은 이후 요르그 임멘도르프(Jörg Immendorff), 마르쿠스 뤼페르츠(Markus Lüpertz),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등과 교분을 나누었다. 뒤셀도르프 미술 아카데미의 교수를 지냈다. 태어난 독일 이외에도, 이스라엘, 영국, 아일랜드, 이탈리아, 일본 등에 체류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근년에는 더블린에 거주하면서 작업 중에 있다.

 사회주의 사회를 등지고, 동서가 마주하고 있으며 이념적 대립의 상징적 의미를 지녔던 서 베를린으로 넘어온 일군의 젊은 동독출신 작가들의 1960년대 활동은 당시 추상의 열풍에 대한 도전적 방향에서 형상화 운동으로 전개된 바 있다. 1970년대 새로운 주관적이고 격동적인 형상회화의 움직임으로 이어진 것이다. 초두에 바젤리츠(G. Baselitz: b.1938)와 오이겐 쉐네벡(Eugen Schönebeck: b.1936)에 이어, 뤼페르츠(M. Lüpertz: b.1941)와 서독출신의 훼딕케(K.H. Hödicke: b.1938)등의 격렬한 표현적 형상회화가 전개되었으며, 70년대에는 분단된 가운데 냉전기에 성장한 새로운 세대인 베를린의 ‘새로운 거친 무리들(Neue Wilden)'인 훼팅(R. Fetting: b.1949), 미덴도르프(H. Middendorf: b.1953), 살로메(Salome: b.1954)등이 맹렬히 활동하였고, 이어서 임멘도르프(J. Immendorff: b.1945), 키퍼(A. Kiefer: b.1945), 펭크(A.R. Penck: b.1939)등이 합류하였다. 이로써 서위 ’신표현주의‘라 불리는 거대한 새로운 국제적 형상회화의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펭크는 1960년대 초 ‘새로운 삶의 주장’으로서 미술을 추구하며, 동독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경직된 사회주의 예술관을 개혁하고자 했다. 아울러 분단독일의 역사문제를 작품 속에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하였으며, 분단이전의 정치적 문화적 유산에 항거하고, 이후 혼란스러운 현대사회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예리한 비판을 가한 예술가로서 독일 표현주의를 부흥시킨 주역중의 하나인 동시에 독일 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는 이른바 ‘세계회화(Weltbilder)'의 연구를 통해 역사와 인간의 모습을 담아 발전시켰다. 일루전을 포기하고 단순한 구성이나 몇 개의 선들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강압과 갈등으로 점철된 냉전시절의 역사적 모순을 축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선사시대 동굴벽화나 석기시대 조각무늬의 형상들에서 유래된 표현양식은 작품의 마술적 • 주술적 효과를 극대화 한다. 펭크의 선사시대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이름을 지질학자이며 빙하시대의 저명한 연구가인 알브레히트 펭크(Albrecht R. Penck:1858~1945)를 본떠 A.R. Penck로 개명한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작가에 있어 빙하시대는 시대에 대한 우의화로서 ’냉전‘을 표상했다.

 1960년대 이후 그의 작품은 대략 ‘세계회화’, ‘시스템(Systen)畵’, ‘슈탄드아르트(Standart)' 세 주제들의 연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주제들은 여전히 남아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세계에서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작가는 정보사회에 적합한 조형의 방법을 찾고자했으며, 미술에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보편적인 소통을 위한 ’기호언어(Zeichensprache)'를 개발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미술작품을 일종의 기호체계로 파악하려는 ‘슈탄드아르트(Standart)' 이론을 제시하였다. Stand(표준)와 Art(기술 • 방식)를 합친 소위 슈탄드아르트는 미술을 표준적이며 보편적인 언어로 재현함으로써 미술 이념을 정확히 반영하고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보편타당성을 지닌 조형언어를 지향했다.

 ‘시스템화’는 그의 용어자체에서 느껴지듯이 사회체제에 대한 그의 발언이다. 어린아이 그림과 같이 서툴러 보이고 해학적인 도식화된 형상들은 동독의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언어를 드러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도식화된 형상들을 담아 사회주의적 이상으로서의 시스템과 현실을 대비시키면서 특유의 해학과 상징으로 그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낙서 같은 자유스러움과 암호 같은 난해함이 있고, 유희적인 동시에 유토피아를 연상시키는 기호화된 형상들로 구성된 그의 화면은 원시동굴벽화를 해독하듯, 숨은 그림을 찾듯 상징적인 이야기들을 따라가게 만든다.

 펭크의 작품에는 규명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있다. 즉흥성과 대담한 구도와 강렬한 필선은 곧바로 펭크회화의 절대적 카리스마를 느끼게 한다. 현대예술에서 순수한 정신의 상상력, 그 극한을 표현해내는 독보적인 작가가 바로 A.R. 펭크가 아닌가 싶다.

 2004년 11월부터 2005년 1월까지 필립강갤러리(前 필립강컬렉션)에서 그의 회화작품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이후 이번에 두 번째 개인전을 보게 되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으며, 특히 같은 시기에 열리는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펭크전을 통해 그의 작품을 함께 전반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것 역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필립강갤러리




<작가소개>

                A.R. Penck / 에이.알. 펭크 (독일, b.1939)



구동독 드레스덴에서 랄프 빙클러(Ralf Winkler)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펭크는, 독일의 신표현주의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공부하여 동독에서 작가활동을 시작하였으나 그 당시 베를린 장벽에 의해 동서독이 분리되면서 작품 활동을 잠시 중단하게 되었다. 그 후 펭크는 단순하고 평면적인 기호 표현을 통해 당시의 체제적 억압이나 존재적 절망 같은 다소 무거운 주제와 선사시대 벽화의 이미지를 동시에 표현해냈다. 어릴 적 기억과 경험이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이 반영되어있으며, 인간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감정을 그만의 독특한 조형언어인 막대기 형태, 즉 stick figure와 sign 등으로 주로 표현했다.



0
0

게시물수정

게시물 수정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삭제게시물삭제

게시물 삭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